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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_ 여천석유화학단지 조성을 위한 기본구상2


> 최병오 전 부사장
“차관협상은 일본정부와의 수싸움”
 
최병오 전 부사장은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우리나라 중화학공업 발전의 초창기에 여수석유화학단지(당시 여천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데 직접 참여한 것은 물론, 오늘의 호남석유화학을 만드는데도 크게 기여한 ‘창업공신’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 속에 호남석유화학은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탄생한, 강한 생명력을 가진 기업이다. 그 역경의 한복판에서 그는 호남석유화학을 세우기 위해 그가 가진 경험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 호남석유화학에 대한 그의 애정은 매우 깊다. “창립 당시에 가장 큰 난관은 일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일이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차관 없이 단지를 건설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기 때문에 일본차관의 도입 여부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금석이었지요.” 그는 차관공여에 미온적인 일본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교섭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교섭단은 육군 4성 장군 출신의 백선엽 한국종합화학 사장, 해군 제독 출신의 장지수 호남석유화학 사장, 육군 소장 출신의 김필상 호남에틸렌 사장 등 이른바 ‘10성 장군’이었는데, 이들이 직접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차관이 절박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쉽게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 때 일본정부가 내놓은 답변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신들은 올림픽대회와 세계무역박람회를 동시에 개최하려고 하는가?’ 이게 일본정부의 반응이었어요. 여천석유화학단지와 제2제철단지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지요.
일종의 비아냥 같은 거였어요. 그러면서 일본정부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이러한 일본정부의 반응에 한국정부가 ‘신의 한 수’로 응수했다. 제2제철단지를 우선할 것이라는 일본정부의 예상을 뒤엎고,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여천석유화학단지를 제1순위로 제시한 것이다. 그만큼 정부 차원에서 여천석유화학단지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선택은 일본과의 ‘수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두 개의 차관을 모두 얻어내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두 번째 역경이라면 건설본부가 사실상 다국적 집단이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조직이 꾸려지자마자 공통언어부터 정했는데, 일본어를 공통어로 쓰는 대신 ‘당신들은 기술적인 지도나 조언만 하고 기기 구매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 룰을 정한 덕분에 450억 엔의 초기 건설 비용을 50% 수준인 261억 엔으로 줄이는 성과를 냈지요.” 말하자면, 일본 측의 간섭을 받지 않고 호남석유화학이 주도하여 고도의 입찰기술을 발휘함으로써 구매비용과 건설비용을 혁신적으로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호남석유화학은 차관금액을 크게 절감하여 자금운용에 여유를 갖는 효과를 누렸다. 이처럼 롯데케미칼은 강한 사명감으로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호남석유화학을 창립한 사람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지속발전할 수 있었다. 최병오 전 부사장을 포함한 호남석유화학 창립의 공신들은 오늘날 롯데케미칼의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다.
[표 1-2] 여천지구 석유화학공업 육성추진계획 (1973. 11. 8)
구분 미쓰이그룹 계열 공장 미쓰비시그룹 계열 공장
공장규모(연간) - 나프타분해공장 30만 톤(BTX 포함)
- 저밀도 폴리에틸렌공장 10만 톤
- 고밀도 폴리에틸렌공장 10만 톤
- VCM공장 20만 톤
- 스티렌모노머공장 10만 톤
- 폴리프로필렌공장 10만 톤
- 산화프로필렌공장 5만 톤
- 전해공장(염소 기준) 14만 7,000톤
- 나프타분해공장 30만 톤
- 저밀도 폴리에틸렌공장 8만 3,000톤
- VCM공장 20만 톤
- 에틸렌글리콜공장 10만 톤
- 스티렌모노마공장 10만 톤
- 폴리프로필렌공장 4만 톤
- 아크릴로니트릴공장 5만 톤
- SBR공장 4만 톤
- 카프로락탐공장 10만 톤
- DMT/TPA공장 10만 톤
- 옥탄올공장 4만 5,000톤
- MMA공장 2만 3,000톤
- 전해공장(염소 기준) 12만 3,000톤
단지규모 - 약 140만 평
건설비 - 내자 5억 6,300만 달러
- 외자 9억 5,000만 달러
- 합계 15억 1,300만 달러
준공시기 1976년
 
 
 
 

통사

홈 통사 제1장 석유화학산업 진출 (1976-1991) 제1절 석유화학산업의 태동 2_여천석유화학단지 조성을 위한 기본구상2
제1절 석유화학산업의 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