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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_ 공장 건설 프로젝트의 시작2


> 최흥식 전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
“호남석유화학은 사명감으로 뭉친 창립멤버들이 만든 회사”
 
최흥식 전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호남석유화학 창립멤버 중 한 명이다. 창립 당시 여천공장의 설계과장으로 근무했다. 그를 만나 창립 무렵의 구매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를 회상할 때마다 그는, 회사를 위해 사생활도 없이 헌신했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곤 한다. 최병오 본부장, 이한수 부장, 김연식 부장, 윤지규 부장 등으로 구성된 구매협상팀이 쏟았던 땀방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중에서도 그는 당시 기술부장을 맡고 있던 이한수 부장에게 아주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원가의식이 아주 투철했던 분이었어요. 남의 돈이라면 오히려 더 쉽게 쓰려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데, 그는 자기 돈 이상으로 아꼈어요. 모든 게 회사의 빚이자 나라의 빚이라는 생각이었던 거지요.”
그가 기억하는 이한수 부장은 비용절감을 위해 모든 아이디어와 최선의 노력을 쏟아붓는 사람이었다. 일본에서 들여온 차관으로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절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이 정도면 됐다’고 해도 절대 만족할 줄 몰랐어요. 오죽하면 팀 내부에서조차 ‘지독하다’는 말이 나왔겠어요. 그바람에 일본측 관계자들이 난처해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비용절감을 위한 그의 노력은 특히 구매과정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여천공장 건설과정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주요 기자재를 가장 경제적으로 구입하는 일이었는데, 일본에서 들여온 차관으로 다시 일본에서 대부분의 기자재를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호남석유화학은 구매자이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이한수 부장은 빼어난 협상력을 발휘하며 구매비용을 줄이는 수완을 발휘했다. 물론 구매협상 과정은 험난한 여정의 연속이었다.
“HDPE와 PP용 익스투루더(Extruder)라는 장비를 구매할 당시의 일화인데요, 당시에는 JSW(일본제강소)가 실적이 월등해서 사실상 우월적 지위에 있었어요. 협상을 하기가 어려운 상대라는 이야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한수 부장은 상대적으로 실적이 떨어지는 고베스틸(神戶製鋼)과 협상을 해서 가격을 낮추고, 그 낮춘 가격을 비교견적으로 해서 JSW를 압도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주도했어요.
대단한 협상기술이었어요. 그러니 구매협상이 간단할 리가 없지요.”
이러한 노력으로 호남석유화학은 460억 엔의 초기 건설비 가운데 60% 수준에 불과한 261억 엔만으로 공장 건설을 뒷받침하는 기록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예산을 초과집행하는 것이 당시의 사업관행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가히 경이적인 일이었고, 국내 기업들의 차관공여 역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대단한 성과였다. 구매협상에서 보여준 이한수 부장의 사명감은 다른 업무를 수행할 때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소속직원들에게는 퇴근시간에 과제를 내주어서 숙소에서도 공부를 하도록 독려했고, 그 자신도 기술잡지나 서적을 탐독하며 관련지식을 쌓았다. 공장에 문제가 생기면 전 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푸는 일도 다반사였다.
특히 일본 측 직원들이 이용했던 서류들을 일종의 지식자산으로 활용한 것은 이한수 부장의 사명감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이다. 일본측 직원들은 건설관련 서류들을 별도의 서류박스에 두고 철저하게 관리를 했는데, 여천공장을 완공한 후 본국으로 철수하는 그들에게 이한수 부장은 ‘그 모든 서류들은 우리 서류이니 절대로 손대지 말라’면서 그대로 가져와 설계과에서 활용하는 치밀함을 보인 것이다.
“그 서류들은 건설 관련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어서 나중에 우리가 참 요긴하게 활용했어요. 이런 모든 게 말하자면 사명감이라고 해야겠지요. 사명감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습니다. 이한수 부장은 항상 ‘모든 일은 우리가 효시이니 우리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곤 했지요.”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는 창립멤버 모두가 이한수 부장과 같은 마음이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이한수 부장’들이 각별한 사명감으로 하나가 되어, 어느 하나라도 소홀함이 없이 완벽하게 수행하려는 자세로 호남석유화학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참으로 원없이 일하던 시절이었다는게 최홍식 전 설계과장의 회고이다. 인터뷰를 마친 그의 표정에는 뿌듯한 미소가 감돌았다.


토목공사가 한창인 공장 전경

당초 동경사무소에는 호남석유화학에서 파견된 엄상수 동경사무소장을 비롯한 한국 측 직원들이 근무하였다. 그 후 인원편제 과정에서 미쓰이석유화학과 미쓰이도아쓰에서 석유화학공장 건설경험이 있는 일본 측 기술인력 5명이 기용되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TSA(Technical Service Agreement)요원이라 불렀다. 이들 일본기술진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건설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한 기술용역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여천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본격화 되고 실질적인 기술도입 프로세스가 진행됨에 따라 TSA요원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TSA요원의 수는 점차 늘어나 1977년 3월에는 미쓰이석유화학에서 9명, 미쓰이도아쓰에서 9명 등 모두 18명으로 증원되었다. 이들은 건설공정의 진척에 따라 1977년 말에는 여천공장 건설현장의 건설관리실 소속으로 이동하여 기술감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한편, TSA요원들이 여천공장 건설현장으로 이동근무하게 되면서 동경사무소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었다. 그 결과 동경사무소는 1978년 2월 25일 도쿄 치요다구(千代田區) 가수미가세키(霞ケ關)빌딩 31층의 미쓰이조선 사무실로 이전했다가, 그 해 10월 31일 모든 업무를 종결하고 폐쇄되었다.
[표 1-9] 건설본부 기구조직도
 
[표 1-10] 여천공장 주공정의 기술도입 계약 내용
구분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EO·EG(에틸렌옥사이드·글리콜)
기술공여사 미쓰이석유화학 미쓰이도아쓰 SHELL개발
기술도입 목적 HDPE 제조공장 건설과 제품 생산 판매 PP 제조공장 건설과 제품 생산 판매 EO·EG 제조공장 건설과 제품 생산 판매
기술도입 내용 - 제조공정 실시권(實施權)
- 제품 판매권
- 공장성능 보장과 제품품질 보장
계약 기간 계약발효일로부터 생산개시 후 10년간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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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여천 석유화학단지 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