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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NC공장 야경

 
 

1 _ NC사업에의 참여


석유화학산업 완전자유화 시책은 1990년 1월부터 국내 어느 기업이든 석유화학 분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삼성, 현대를 비롯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석유화학산업에 진출하는 계기 가 되었던 것이다.

 
 

석유화학산업 경쟁구도의 변화

1990년대는 그야말로 질곡의 시대였다. 1990년대 초에는 극심한 불경기로 기업들이 큰 고통을 겪었는데, 중반으로 들어설 무렵에는 빠르게 경기가 호전되며 최대의 호황 국면을 보이더니, 후반으로 가면서는 급기야 유사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 외환위기를 맞을 만큼 경영환경이 급박하게 변화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 세계경제는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WTO체제를 출범시켜 세계무역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WTO체제는 이전의 무역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들면서 ‘자유로운 무역’과 ‘치열한 생존경쟁’이 교차하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의 일정한 보호 아래 있던 기업들도 이제는 안방에서조차 글로벌기업들과 맨몸으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경쟁은 갈수록 심해졌다. 더구나 석유화학산업은 1986년 7월 공업발전법이 시행되고, 1988년 11월에는 정부가 석유화학산업 완전자유화 시책을 발표하면서 치열한 경쟁상황으로 변하였다. 석유화학산업 완전자유화 시책은 1990년 1월부터 국내 어느 기업이든 석유화학 분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삼성, 현대를 비롯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석유화학산업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시장에 새로 진입한 신규업체들은 대대적인 설비투자를 바탕으로 저가공급과 적극적 마케팅을 펼치며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기존 업체들도 시장을 사수하기 위해 시설을 신·증설하고 가격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이러한 시장상황은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외연을 확장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집중적인 설비투자가 공급과잉을 불러와 기업들의 수익구조를 악화시키고 불경기를 부르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석유화학 업스트림(upstream)분야 진출

공업발전법의 시행과 석유화학산업 완전자유화 시책을 계기로 많은 기업들이 석유화학산업에 진출하면서 기존의 경쟁구도와는 다른 치열한 경쟁을 불러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인 삼성과 현대의 유화업계 진출은 경쟁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그때까지만해도 석유화학사업을 하지 않고 있던 삼성·현대가 NC(나프타분해)공장을 포함한 대산콤플렉스(complex)를 건설하면서, 국내 유화업계는 그동안 유지돼 온 분업의 틀이 깨지고 사실상 무한경쟁체제로 전환되었다.
기업들은 이제 NC공장과 석유화학계열공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석유화학 콤플렉스를 독자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호남석유화학을 비롯하여 럭키화학(현 LG화학),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 대한유화 등 다운스트림(downstream) 사업자들도 생존을 위해 NC공장 신설에 적극 나섰고, 유공과 대림사업 등 원료공급업체들도 NC사업만으로는 위협을 받게 되자 다운스트림 부문에 새롭게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90년부터 1992년 사이에 국내 유화업체들은 앞다퉈가며 석유화학산업 전반에 걸치는 생산시설 신·증설을 완료하였다.
NC공장의 경우 정부가 1980년대 말 신규참여업체를 모집하자 호남석유화학을 포함한 LG, 한양화학, 대한유화, 호남에틸렌, 금호석유화학, 유원건설 등 7개 업체가 정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였다. NC사업은 유화업계의 원료인 에틸렌을 생산하기 때문에 석유화학산업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성이 높은 사업이다. 이 때문에 기존의 석유화학업체들과 신사업 진출을 노리는 정유업체들이 강한 진출의욕을 보였다.
NC공장 건설사업(30~40만 톤 규모)에는 최소 4~5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계열공장과 공업용수, 부지조성, 항만, 전기, 도로 등 사회간접시설까지 포함하면 7~8억 달러의 투자비가 소요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그 뿐만 아니라 건설과정에서 기술도입, 부지조성, 공장설계, 준공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4~5년이 걸리고, 투자회수기간도 대략 9년에 이르는 대형사업이었다. 한 마디로 새로운 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NC공장 건설사업은 웬만한 기업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고,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과 기술,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대그룹 계열사들이 사업에 나섰다.
정부는 한국산업연구원(KIET)에 사업타당성 용역을 의뢰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 초까지 에틸렌 기준으로 연산 30~40만 톤 규모의 NC공장 건설이 필요하다는 한국산업연구원의 연구보고를 토대로 사업체 선정에 들어갔다. 그 결과 울산석유화학단지에서는 대한유화가, 여천석유화학단지에서는 호남석유화학이 NC공장 신규 투자업체로 선정되었다. 호남석유화학은 수직계열화에 의한 경쟁력이 높고 타인자금 의존비율이 낮으며 공장입지가 확보된 업체를 우선 선발한다는 정부기준에 부합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 받아 1988년 11월 22일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1989년 호남석유화학은 기존 여수공장 건설 초기에 시설 확장을 전제로 확보해 두었던 유휴부지를 할애하여 에틸렌 연산 35만 톤 규모의 NC공장 건설을 추진하였다. NC공장 건설은 기존 공장 내 유휴용지 7만 평의 부지에서 즉시 착공이 가능한 상태였다. 인접한 회사토지 4만여 평은 추후 공장증설 부지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NC공장 건설 전경_1990.5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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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수직계열화의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