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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E공장 건설

 
 

4 _ 각 단위공장의 건설


공장 전체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EO정제탑은 높이가 53m에 달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 기술진들이 우려를 표했는데도 호남석유화학은 국내기업인 대한화학기계에 발주하여 과감하게 국산화를 추진하였다.

 
 

① HPE공장 건설공사

호남석유화학 HPE공장은 1977년 11월 3일 기초파일링을 시작으로 1978년 6월 파이프랙, 제립실(pelletizer house) 등의 기초공사가 거의 완료되었다.
이어 기기 설치공사가 진행돼 1978년 6월 제립기(製粒機) 2기와 연속식 고강력혼련기(混練機, continuous intensive mixer, CIM) 2기의 설치를 완료했다. 7월에는 슬러리(Slurry) 세정(洗淨)부문의 글라스 라이닝조(glass lining 槽) 13기의 설치도 끝마쳤다. 위험성이 많은 글라스 라이닝의 설치는 조 내부에 라이닝이 된 유리가 손상되지 않도록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작업이었다.
중량물과 위험도가 큰 공사들도 주의 깊게 이루어졌다. 1978년 6월까지 메탄올탑을 비롯한 5기의 탑을 설치하고, 1979년 2월까지 제품 사일로(pellet silo) 6기의 설치를 무사히 완료함으로써 공정의 96%를 달성했으며, 1979년 3월 30일 시운전에 들어갔다. 시운전 과정에서 기밀시험 도중 용접불량으로 누설부위가 발견되었으나 호남석유화학 기술진과 대림산업 건설책임자가 회의를 열고 미비점 리스트를 만들어 점검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공정이 원만히 돌아갈 수 있도록 극복해 나갔다.
4월 26일에는 전체 공정의 압력시험과 플러싱(flushing)을 완료하고 5월부터 다시 시운전에 들어갔다. 증기가 공급되고 냉각수시설이 가동되었고, 주요기기에 대한 기기제작사의 시험운전이 진행되었다. 시운전은 전 공장이 밤낮없이 3교대로 진행되었다. 5월 19일부터는 질소 주입이 시작되었고, 8월 15일까지 헥산과 메탄올의 정제공정, 중합, 탈회, 제립공정의 시운전을 완료함으로써 PE공장의 시운전을 끝마쳤다.

② HPP공장 건설공사

HPP공장은 1977년 10월 18일 헵탄탱크의 기초파일링을 시작으로 1978년 5월까지 기초공사를 대부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기기설치 공사는 1978년 3월 시작하여 4월에는 글라스 라이닝조 4기와 반응기 8기를 설치했고, 알루미늄 재질의 대형 제품 사일로 16기는 현장에서 제작해 10월까지 설치하였다.
철골공사도 1978년 3월부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7월에 이르자 철골부재가 대량으로 소요되면서 공급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철골부재번호 기입에 착오를 일으키거나 불량품 발생까지 겹쳐 제립실 설치작업에 지장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1979년 2월 27일 기기설치 공정을 99% 완료 하였다.
1979년 2월 6일부터 IA 및 PA라인 기밀시험과 플러싱을 시작으로 회전기기의 각종 기능시험과 기기의 Loop 시험 등 시운전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호남에틸렌의 공사 지연으로 스팀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HPP공장의 조기운전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때 호남석유화학은 행정동의 보일러 스팀을 활용해 1979년 5월 9일부터 1차 수운전(hot water run)에 들어갔다. 그리고 1979년 6월 헵탄과 메탄올을 공급받아 비로소 정상화됨으로써 공정별 용수공급에 이어 질소 주입이 이루어졌고 시운전 준비도 완료되었다.
그러나 시운전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였다. 분해공정 마무리작업 중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주요 기기를 재건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시설 일부에 손실이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보수작업을 실시하고, 이후 슬러리 운전과 중합, 공정 및 탈회부문 시운전 시험을 성공리에 마침으로써 7월 30일에 공사를 완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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