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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석유화학단지 합동기공식, 최병오 이사 동탑산업훈장 수상_1980.1.29

 
 

5 _ 여천석유화학단지 준공


여천석유화학단지는 1976년 합동기공식을 가진 이후 호남석유화학, 호남에틸렌, 한양화학, 한국다우케미칼 등의 기업들이 입주하여 에틸렌 연산 35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공장과 9개 계열공장을 완공하면서 전남 광양만 내륙권을 중화학산업의 심장부로 바꿔 놓았다.

 


시공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관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 공사는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각 단위공장별로 속속 완공되었다. 이에 여천석유화학공단은 1979년 10월 26일 합동준공식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준공식은 이듬해로 연기되었다.
결국 준공식은 1980년 1월 29일 오후 2시 호남에틸렌공장 구내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는 최규하 대통령을 비롯해 정재석 상공부장관, 김용휴 총무처장관, 류기정 국회 상공분과위원장, 박병효, 이도선, 허경만 등 지역출신 국회의원, 롯데그룹 신준호 부회장, 미쓰이석유화학의 도리이 야스시 회장, 제일화학공업 우치다 가쓰오 사장 등 300여 명의 내외 귀빈과 인근 지역주민 1,0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최규하 대통령은 준공식 치사에서 “세계적으로 자원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이때 우리가 건설한 대규모 여천단지는 앞으로 석유화학제품의 원활한 공급과 가격 안정에 기여하면서 관련산업의 발전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78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약 47만 톤의 합성섬유를 모두 면(綿)으로 대체한다면 우리나라 전체 밭면적의 90%에 해당하는 목화밭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며 이 사실만으로도 석유화학공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듭되는 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침체 해 투자여건이 불리한 가운데도 내외자 합계 약 5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이 사업을 추진해온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여천석유화학단지는 1976년 합동기공식을 가진 이후 호남석유화학, 호남에틸렌, 한양화학, 한국다우케미칼 등의 연관기업이 입주하여 에틸렌 연산 35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공장과 9개 계열공장을 완공하면서 전남 광양만 내륙권을 중화학산업의 심장부로 바꿔 놓았다. 농토와 야산뿐이던 벽지에 산을 헐고 바다를 매립한 땅을 더해 조성한 85만 평의 부지에 최신 공장들이 콤비나트를 구축 해 상전벽해의 거대한 장관을 이룬 것이다.
공단기반시설과 공장의 건설에는 10억 2,000만 달러, 당시 환율 기준으로 5,180억 원이 투입되었다.
여천단지의 가동으로 한국의 석유화학공업은 새로운 도약기를 열게 되었다. 세계 24위에서 14위의 석유화학공업국가로 발돋움하게 되었으며, 연간 약 9억 7,400만 달러의 수입대체 효과와 더불어 해외수출의 여력까지도 갖추게 되었다.
호남석유화학의 경우 여천공장 가동으로 연간 2억 달러의 수입대체 효과를 올리게 되었다. 특히 국내에서는 전혀 생산되지 않아 연간 6,000만 달러 상당을 수입해 오던 EG를 국내에서 생산하게 됨으로써 1979년 11월부터 국산 EG를 합성원료로 사용하게 된 것은 물론, 당시의 주요 산업인 섬유산업의 발전에도 일조할 수 있게 되었다.
준공식과 함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호남석유화학 여천공장은 건설과정에서도 공정의 선택과 공사감독 등을 호남석유화학이 주관하여 수행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공장이 외국기술자들에 의해 건설되었고, 울산석유화학공장도 외국기업에 일괄하청(turn-key basis) 방식으로 건설된 터였다. 그러나 여천석유화학단지의 공장들은 울산공장 건설 당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 기술진이 직접 참여하여 건설했다는 점에서 우리 산업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다수의 기기와 부품을 국산품으로 채택함으로써 정부가 추진하던 국산화시책에도 크게 부응하는 성과를 창출하였다. 국산화 확대를 위해 호남석유화학은 사내에 ‘국산화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산화가 가능한 설비 및 기기 대상을 선정하였다. 그리하여 공정탑 부분, 열교환기류, 배관제, 펌프류의 각종 케이블 등을 국산품으로 채택하는 용단을 내렸다. 채택한 국산품은 총 기자재비용의 21%에 해당하는 82억 원어치에 달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국산장비는 53m 높이의 EO정제탑으로, 이를 국산기술로 설치함으로써 국내업체들이 대형장치산업에 대한 경험을 쌓고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 밖에도 호남석유화학은 공장건설비에서도 담당자의 합리적인 견적 산출 노력으로 당초 예상했던 총 1,474억 원의 건설비를 1,280억 원으로 줄임으로써 13.2%에 해당하는 194억 원을 절감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표 1-13] 여천공장 시설규모 (1980년 1월 준공 당시)
구분 시설 내용 기본설계 상세설계 건설공사
공장시설 고밀도 폴리에틸렌(연산 7만 톤) 미쓰이석유화학 미쓰이조선/대림엔지니어링 대림산업
폴리프로필렌(연산 8 만 톤) 미쓰이도아쓰 동양엔지니어링/KECL 대림산업
에틸렌글리콜(연산 8만 톤) SHELL개발 미쓰이조선/대림엔지니어링 대림산업
용역시설 공기분리공장(산소 9,700NCMH, 질소 1만NCMH Kobe Steel KSL Kobe Steel
동양엔지니어링/KECL
Kobe Steel
대림산업
수·배전설비(3만KVA××2기)  
용수처리설비(시간당 1,400톤)  
부대시설 시험연구실(2동 882평)   정림건축연구소 대림산업
공무정비시설(1,243평)   동양엔지니어링 대림산업
종합폐수처리장(시간당 300톤)   미쓰이조선 대림산업
제품창고(7,820평)   정림건축연구소 현대중공업
저장탱크(10기, 1만 4,700㎥)   동양엔지니어링 조선공사
행정건물(1,330평)   정림건축연구소 대림산업
사택(172세대, 100명용 B.O.Q)   정림건축연구소 현대중공업
부지 공장(19만 평)     산단개발공사
사택(4만 6,800평)     진흥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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