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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A공장 건설_2000.5.25

 
 

3 _ MMA사업의 새 강자 등극


MMA는 전자부품, 자동차부품, 광섬유, 레이저디스크 등에 사용되는 PMMA의 원료를 말하는데, 건자재, 페인트, 접착제, 첨가제 등 다양한 용도로 폭넓게 활용되는 소재이다. MMA는 수익성이 매우 높은 사업으로, 선진국에서도 기술이전을 기피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1996년 7월 16일 이사회 승인을 기점으로 호남석유화학이 MMA사업을 추진할 당시, 국내시장에서 MMA는 LG화학이 보유한 5만 톤 용량의 공장 하나가 전부였다. 따라서 국내수요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호남석유화학은 MMA를 주력사업 가운데 하나로 육성하기로 하고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당시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던 공법은 ACH공법이었는데 호남석유화학은 이 공법이 독극물과 강산의 취급으로 투자비가 높고 환경적 측면에서 약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해 호남석유화학이 미쓰이화학과 Kuraray로부터 도입한 C4산화공정은 ACH공정이 가지고 있는 환경문제, 공정위험성을 완전 해결한 최첨단 제조공정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기술공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호남석유화학은 합작파트너였던 미쓰이화학을 설득하여 1997년 5월 14일 미쓰이화학/Kuraray와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고, 12월 22일에는 TEK와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하여 MMA사업을 본격화하였다.
호남석유화학은 1999년 완공을 목표로 1997년 말 제2공장 부지에 연산 4만 톤 규모의 MMA공장 건설공사를 착공했다.
그러나 건설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설계 시작 6개월 만인 1998년 6월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이다. 이때부터 1년 3개월 동안이나 사업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1999년 10월에 건설공사를 재개했으나 2000년 8월 시공사인 신화건설이 부도가 나면서 공사가 또다시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호남석유화학은 2001년 2월 연산 4만 톤 용량의 공장을 준공하고 같은 해 5월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MMA사업은 기술이전을 기피하는 수익성 높은 사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시장가격이 좋지않아 실적은 지지부진하였다. 이 같은 불경기는 거의 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 사업은 마치 고진감래처럼 2003년 들어서야 시황이 호전되었다. 이때부터 MMA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당초 기대했던 것처럼 높은 수익성을 실현하기도 했다. 급기야 유일한 선행사업자였던 LG화학과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비로소 성공한 사업으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이에 2005년 4월에는 생산시설 증설공사를 시행해 생산량을 5만 톤으로 확대하기도 하였다.
한편 MMA사업의 원료공장인 TBA(Tert-Butyl Alcohol)공정은 기술도입 금액이 과다하여 자체 개발로 추진하였다. 해외기술 도입 없이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협력으로 설계하여 건설한 것이다. 이 공정 역시 1997년 말 IMF 상황을 맞아 사업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으나, 주요 기기를 이미 구입했고 건설업체와의 계약관계도 있어 1999년 7월 사업을 재개하여 2001년 5월 완공하였다.
 

MMA공장 전경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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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사업 입지의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