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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02

마침내 기초소재산업의 기틀을 닦다

 



01

EO,
높이 54.4m
국산 정제탑
마침내 우뚝 서다

 


호남석유화학의 건설은 총 소요자금이 3억 400만 달러에 이르는 대역사였다. 건설 기간은 1976년 4월부터 1979년 10월에 이르기까지 총 3년 6개월이 소요되었다. 공장건설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실비정산계약(cost plus fee)을 통해 애초 일본차관 450억 엔의 60%대인 261억 엔을 집행함으로써 건설경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성과를 나았고, 또 이 같은 이례적인 예산 절감 상황에서도 내실에 만전을 기해 완공해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먼저, 당시의 열악한 국내기술수준을 고려해 볼 때 상세설계의 약 10%를 직접 해냈다는 점은 큰 의의를 지닌다. 비록 배관 드로잉에 머물렀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훗날 한국 엔지니어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계기가 되었다. 만약 한국 기술의 열악함을 들어 일본 측에 100% 상세설계를 맡겼다면 호남석유화학은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대역사에서 미래 기술발전을 위한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미쓰이조선에서 제작돼, HEG공장에 들어선 세계 최대 크기 EO반응기(지름 5m, 전장 23m, 중량 430톤) 설치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전용운반선에 실려 삼일항에 도착한 반응기는 마땅한 육로수송방법이 없었다. 호남석유화학 기술자들은 험난한 여건에 굴하지 않고, 전용선 접안을 위한 임시부두를 만들고, 혹시라도 있을 사고에 대비해 땅을 다지고, 그 위에 철판을 까는 것을 마다치 않았다. 이후 굴대를 이용해 최종 설치장소까지 굴려서 이동한 후, 220톤 대형크레인을 투입해 설치를 완벽하게 해냈다. 이 같은 경험은 훗날 현지 지형조건이 열악한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공장 같은 해외공장 건설에도 유용하게 사용하게 된다.
호남석유화학 기술진들은 정제탑 국산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일본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술진들은 기술력 확보와 원가 절감을 위해 높이 54.4m에 달하는 EO정제탑을 자체 기술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로 한 결정에 따른 큰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먼저 제작에 적합한 국내 업체로 대한화학기계를 선정하고, 발주에 앞서 밤샘 기술회의가 하루가 멀다고 열렸다. 완벽한 설계를 위해 업계 선진국의 자료란 자료는 다 가져와 분석하고, 호남석유화학 현실에 맞지 않는 부문은 과감히 뜯어고쳐 상세설계를 마쳤다. 당시 실무자의 회상은 이러했다.
“일종의 우국충정의 마음도 섞여 있었어요. 완성되면 단지 어디서나 보이는 제일 높은 구조물인 정제탑을 일본 기술자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었다고나 할까요.” 이 과정에서 일본 기술자들은 깊은 우려를 표시하곤 했다.
“이해는 해요. 그들이 일본인이지만 어디까지나 엔지니어니까요. 엔지니어는 모험을 택하기보단 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사고와 결정을 통해 결과물을 내놓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죠. 다만 우리는 석유화학산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 강했던 거죠.” 그렇게 EO반응기는 여수단지 내에 우뚝 섰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반응기 설치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석유화학업계의 출범을 전 세계에 알리는 상징적인 탑이 되었다. 1978년 4월의 일이었다. 이후 EO반응기, EO흡수탑, EO탈기탑이 무사히 들어섬으로써 HEG공장은 1979년 10월에 시험 운전을 마치고, 12월에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HEG공장 완공

 
 
 
 

스토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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