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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_ 공장가동 초기의 판매부진2


제품 처녀출하_1979.9.7

 
이러한 가운데 선발업체가 이미 독점 공급하는 HDPE, PP 제품시장에서 후발업체의 제품들은 판매가 쉽지 않았다. 가공업체의 운전조건이 선발업체 제품에 맞게 조정된 상태에서 후발업체의 제품 사용을 기피하는 현상이있었던 데다, 선발업체의 할인판매 등으로 시장점유율 확대에 어려움이 가중된 것이다.
PP제품은 계속적인 판매부진으로 1980년 4월에는 재고가 1만 톤을 초과할 정도가 되었다. 이 때문에 5월부터 8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총 95일이나 가동을 중지하며 재고를 조절해야만 하였다. HDPE제품 역시 낮은 가동률에도 불구하고 값싼 천연가스를 원료로 제조한 덤핑수입품의 영향으로 1981년 5월 재고가 1만 5,000톤을 초과하였다. 결국 HDPE제품도 1981년 9월부터 1982년 1월까지 6차례에 걸쳐 총 45일간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하였다.
호남석유화학이 국내 최초로 공장을 가동한 MEG 역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오던 제품을 국산화한다며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수입제품의 가격인하와 덤핑공세로 인해 판매 증대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국가적인 수출산업으로 자리 잡은 섬유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석유화학제품의 가격을 규제하였기 때문에 제값을 받기도 어려웠다. 국내 화섬업체들이 해외 공급업체와 장기수입계약을 맺고 있거나 구매사절단을 보내 대량으로 수입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판매부진의 원인이었다.
결국 MEG 역시 1980년 1월 현재 재고가 1만 톤을 초과하게 되었고, 공장의 가동률 저하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화섬업체와의 MEG 의무인수서 협상이 이루어지면서 1980년 10월부터는 재고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었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공장가동 초기에 판매부진으로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호남석유화학은 공장가동 첫 해부터 적자를 기록하였다. 1980년도 매출액은 1,004억 원에 불과했고, 경상이익도 70억 원의 적자에 머문 것이다. 1981년에도 매출액은 1,174억 원에 머물면서 114억 원의 적자행진이 이어졌다.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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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절 창립 초기 경영의 안정기반 구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