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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E공장 완공

 
 

6 _ 공장 가동 및 안정화


① HPE공장(HDPE 생산)

연산 7만 톤 규모의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생산하는 HDPE공장은 1979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HDPE공장은 1950년대부터 꾸준히 개발된 ZIEGLERNATTA계촉매를 사용했는데, 이 촉매공정은 슬러리공정으로 단일계통의 연속식중합이 가능하도록 건설되었다.
HDPE공장에서는 고밀도 폴리에틸렌 19개 grade가 생산되었고, 특히 초대형용기와 파이프제조용 특수제품도 생산되었다. 영업 초기에는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침체와 신생회사인 호남석유화학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HDPE품질의 우수성이 인정되면서 1980년에는 국내시장을 57%나 점유하는 약진을 보였다.
1982년 6월에는 미쓰이석유화학이 고활성촉매에 의한 최신공정을 새로 개발하면서, 호남석유화학도 이 공정을 도입하는 개량공사를 실시했다. 이를 계기로 운전방법이 변화함에 따른 다양한 제품생산은 물론, 슬러리 처리 과정과 용제회수(溶劑回收) 과정이 대폭 간소화돼 에너지효율이 향상되었다.


HPP공장 완공

② HPP공장(PP 생산)

호남석유화학은 3개 석유화학계열 공장 가운데 원료가 확보된 PP공장을 1979년 8월 10일부터 우선적으로 가동을 시작하였다. 원료공급사인 호남에틸렌의 공사가 지연되자 1978년 하반기부터 원료를 수입해 공장을 가동하는 방안을 대비해 놓은 덕분이었다.
원료는 1979년 7월부터 8차례에 걸쳐 프로필렌 5,000톤이 수입되었다. 그 중 일부는 원료공급라인과 원료저장탱크 주입용으로 호남에틸렌이 사용토록 하고 나머지는 PP공장 조기가동에 투입되었다. 1979년 9월 5일 수입 프로필렌으로 만든 PP J-150 30톤을 내셔널플라스틱에 판매함으로써 최초의 영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용 가능한 원료가 3,500톤에 불과해 사실상 시험조업 수준에 그쳤다. 그 이후 원료가 안정적으로 확보되면서 PP공장은 그 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면서 판매에 들어갔다.
폴리프로필렌은 기존업체인 대한유화의 연산 10만 5,000톤에 이어 호남석유화학이 연산 8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당시 국내 수요인 16만 톤을 2만 톤이나 초과하는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입대체 효과를 넘어 수출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8만 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가진 호남석유화학 PP공장은 세계 최초의 PP생산회사인 이탈리아 MONTECATINI의 제조기술을 미쓰이도아쓰에서 개량하여 완성한 공정을 적용함으로써, 중합반응 시 운전조건 등이 컴퓨터로 조절되어 꾸준하게 향상된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특히,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계열화한 공장에서는 호모폴리머(상품명 HOPELEN) 15개 grade, 코폴리머(상품명 KOPELEN) 11개 grade, 복합강화수지(상품명 POPELEN) 12개 grade를 생산하여 판매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던 공업용 플라스틱 원료인 코폴리머(copolymer)를 제조하게 됨으로써, 국내의 전기기기부품과 자동차부품 등 연관산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HEG공장 완공

 

③ HEG공장(EO/EG 생산)

HEG공장은 최신공정을 채택한 공장 건설을 완료하고 시운전 가동을 마친 후 1979년 12월부터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이로써 여천공장은 착공 21개월 만에 완공을 보게 되었고, 여천석유화학단지는 울산공업단지와 함께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전략핵심지가 되었다.
EO/EG공장의 가동으로 호남석유화학은 이제까지 수입에만 의존하던 에틸렌글리콜을 연간 8만 톤씩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에틸렌글리콜은 합성섬유의 필수원료이지만 국내에서는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남석유화학에 의해 최초로 국산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우리나라 화섬산업은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생산된 제품은 EO와 EG 3개 grade로 분류되어 판매되었고, 에틸렌옥사이드는 에틸렌글리콜의 주원료로 사용되었다.
공장 안정화 토양된 가동 초기의 운전정지 사고들

공장 가동 초창기에는 유틸리티의 공급 중단과 공장운전 경험 미숙 등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가동정지 사고가 종종 일어나곤 하였다. 이는 공장 가동 초기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호남석유화학은 이같은 정지사고를 교훈으로 삼아 원료공급체계와 기기설비를 철저히 점검 관리하여 전체 공장을 조기에 안정화시켜 나갔다.
가장 눈에 띄는 가동정지 사고는 1980년 산업기지개발공사로부터 공급받는 배관이 동파되어 공업용수의 급수가 중단되면서 19일 동안 전 공장이 멈춰선 사고였다. 또 1981년에는 40일간의 정기보수를 마치고 재가동에 돌입하려 할 때, 원료공급처인 호남에틸렌에 보일러 사고가 발생하여 40여일 동안 공장가동이 정지되기도 하였다. 호남에틸렌의 변전실 파손으로 전기공급이 중단되어 전 공장이 12일 간 정지되는 바람에 공정에서 비규격품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기공급 중단사태는 그 후에도 종종 발생했는데, 1981년 한 해 동안 6차례나 전기공급이 중단돼 11일간 전 공장이 정지되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호남석유화학은 호남에틸렌의 원료물량 제한조치로 1981년 4월부터 5월까지 2차례에 걸쳐 HPP공장의 조업을 중단했고, 나프타분해로에서 일정비율을 생산해야 하는 호남에틸렌의 생산불균형 등의 사정으로 에틸렌이 부족해 HPE공장이 저율가동을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운전경험 부족에 의한 자체 가동정지 사고도 상업운전 1차 년도인 1980년에 수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그러자 호남석유화학은 공장운영 초기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고 전체 공장의 정상가동 운영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1980년 하반기 들어 제품의 품질안정을 기할 수 있는 품질관리기법을 도입하고 운전표준화를 수립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1년여의 운전경험을 토대로 각 기기별, 공정별로 구체적인 운전방법에 검토하여 최상의 방법을 찾아 표준화하였고, 일정 기간 운전을 거쳐 미비점을 보완한 운전표준(Standard of Operation)도 마련하였다.
이처럼 운전경험을 축적하고 운전표준화를 추진한 결과 1981년 이후 여천공장에서는 자체원인으로 인한 가동정지 사고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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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여천 석유화학단지 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