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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석유화학 창립총회_1976.3.16

 
 

1 _ 석유화학회사 창립 위한 지주회사 설립


여수석유화학과 제일화학공업의 합작회사 명칭을 호남석유화학주식회사로 정하고 1976년 3월 16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석유화학공업 추진계획’의 발표와 동시에 한·일 양측은 합작계열사의 설립에 착수하였다. 합작계열사는, 미쓰이그룹과 미쓰비시그룹이 각각 1개의 지주회사를 투자회사로 설립하고, 이 2개의 지주회사가 설립된 후 6개월 이내에 한국 측의 합작선인 한국종합화학과 각각 1개씩의 합작계열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73년 11월 20일 미쓰이물산(三井物産), 미쓰이도아쓰(三井東壓), 미쓰이석유화학(三井石油化學), 니혼석유(日本石油) 등 4개사로 이루어진 미쓰이그룹 투자단이 제일화학공업주식회사(第一化學工業株式會社, 이하 제일화학공업)를 지주회사로 설립하였다.
또 11월 21일에는 미쓰비시상사(三菱商社), 미쓰비시유화(三菱油化), 미쓰비시석유(三菱石油), 아사히가라스(旭硝子工業), 신월화학(信越化學) 등 5개사로 구성된 미쓰비시그룹 투자단이 일본종합화학주식회사(日本綜合化學株式會社, 이하 일본종합화학)를 지주회사로 설립하였다.
한국도 한국종합화학의 전액출자로 1973년 12월 17일 여수석유화학주식회사(麗水石油化學株式會社, 이하 여수석유화학)를 지주회사로 설립하였다. 여수석유화학의 발기인으로는 백선엽(한국종합화학 사장), 서석준(중화학추진위원회 기획단 부단장), 황병태(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홍승환(재무부 재정차관보), 유각종(상공부 경공업차관보), 정재덕(건설부 기획관리실장), 김광모(대통령비 서실 비서관), 심원택(산업은행 부총재) 등이 참여하였다.
여수석유화학의 사무실은 한국종합화학이 12~13층을 사용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경운동 88번지 수운회관 건물의 8층에 마련되었다. 여수석유화학이 설립됨에 따라 석유화학공업추진위원회는 해체되고, 추진위원회가 해오던 업무는 여수석유화학으로 승계되었다.
 
[표 1-3] 여천석유화학단지 석유화학회사 설립 방안 (1973. 11. 8)
 
설립 당시 여수석유화학의 경영진으로는 김필상 사장과 마경석 부사장이 선임되었고, 이사에는 함경소, 이동수, 최병오가 선임되었으며, 감사에는 윤기철이 선임되었다. 이외 기술부문에는 부장 12명, 과장 2~3명, 계장 2명(서갑수, 정범식), 사원 1명(조사웅) 등이 있었고, 사무부문은 엄상수 계장과 손금수 사원이 행정지원을 담당하였다. 창립초기 여수석유화학의 구성원은 대부분 우리나라 최초의 국영기업인 충주비료 출신의 우수한 경력직원들로 채워졌다. 이에 더해 1974년 1월 14일 서울대 출신의 신입사원 9명이 제1기 공채사원으로 여수석유화학에 집결하였다.
1973년 11월 당시 석유화학공업추진위원이던 마경석 여수석유화학 부사장이 서울대학교에 윤강을 간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여수석유화학 입사를 권유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서울공대 화공과 학생 12명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본사에서 면접을 볼 때 마경석 부사장이 들어와 모두 입사시키라며 면접을 끝내 버렸다고 한다. 이후 KAIST에 중복합격한 인원을 제외하고 전원 입사가 결정되었다. 이들은 허수영, 남기윤, 박홍식, 이성연, 이성훈, 양종하, 장형태, 이린, 홍기형 등으로, 이후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르거나, 업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맹활약하면서 대한민국 석유화학산업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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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호남석유화학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