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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EG공장

 
 
 

(1) IMF 외환위기에 따른 석유화학산업 재편

 
1991년 1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으로 이른바 걸프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로 인해 유가가 폭등하면서 세계 석유화학시장은 극도로 침체되었다. 더구나 제품가격이 원료비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석유화학업계의 경영을 위태롭게 하였는데, 그 여파로 결국 1993년에 대한유화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롯데케미칼(당시 호남석유화학)도 688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생존을 보장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다가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다만 이 시기의 시련이 이후 호남석유화학이 내실을 다져 성장하는 발판이 돼 주었다는 점은 그나마 얻은 소득이자 교훈이었다.
걸프전의 종식과 함께 유가가 안정세로 돌아서고 가스발전의 확대로 가스가격이 오르면서 액체원료의 석유화학산업은 빠르게 가격경쟁력을 회복하였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중반 무렵에는 세계 석유화학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경영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현대와 삼성은 발 빠르게 제2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삼성은 방향족 사업에 주력한다는 방향을 설정하고 리포머, PX, SM 공장 건설을 추진하였고, 현대는 에틸렌 60만 톤급의 대형 일괄 석유화학단지의 건설에 나섰다.
그러나 곧이어 1997년의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한국경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구제금융을 지원한 IMF(국제통화기금)는 고금리정책을 실시하여 지불능력이 부족한 기업은 과감히 정리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석유화학업계에서는 대림산업과 한화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차입금이 많은 삼성과 현대도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대림과 한화는 석유화학부문을 하나로 통합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이를 극복하였다. 에틸렌부문은 양사가 공동경영(현 YNCC)하고, 석유화학계열공장은 주력부문을 통합·교환하여 각각 대림석유화학과 한화케미칼로 독립하여 독자경영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과 현대도 전경련 내에 통합을 위한 추진팀을 발족하고 매각 또는 석유화학단지별 통합운영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통합에 이르지 못하고, 삼성은 프랑스 토탈그룹으로부터 외자를 유치하여 삼성토탈로 거듭났으며, 현대는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편 1990년대 들어 재무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다진 롯데케미칼은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자기자금으로 공장 증설에 나서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나갔다. 이 때 건설한 3EG공장은 착공 당시 업계에서 우려하던 것과는 달리 완공 시점에 제품가가 폭등하면서 높은 수익성을 실현하여, 가동 1년여 만에 건설비를 회수하고 회사 수익에도 크게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 대림과 합동으로 추진한 3PE, 3PP 공장도 예정대로 완공하고 여수공장의 에틸렌공장을 증설하여 원료-제품 일괄생산체제를 완성하는 등 선진 수준의 생산체계도 구축하였다.
이에 따라, 에틸렌공장을 보유한 8개사 중 7번째 수준의 규모로 인식되던 호남석유화학은 IMF 외환위기를 지나는 동안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성공적인 증설을 단행하여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선두기업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수공장 전경

 
 
 
 
 

기획지면

홈 기획지면 제3장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역사 제2절 IMF 외환위기에 따른 석유화학산업 재편 (1) IMF 외환위기에 따른 석유화학산업 재편
제2절 IMF 외환위기에 따른 석유화학산업 재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