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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E공장 건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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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업체들이
일본 측 실무자
를 두고 한국 측
실무자를 먼저
찾아온 까닭은?

 


이 같은 소문은 즉각 일본 업체들 사이에 쫙 퍼졌다. ‘여수프로젝트’는 일본 측이 아니라 한국 측이 실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 업체들의 머리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전에는 일본 실무자들만 찾아 인사를 하던 이들이 한국 실무자를 먼저 찾아와 각종 브리핑을 하고, 미팅하고자 줄을 섰다.
협상 실무자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자재를 발주할 때마다 견적서를 분석하고 또 분석해 최종 두 회사를 선정한 뒤 입찰이 아니라, 일대일 가격협상에 들어갔다. 최종적으로 건설본부에서 내정한 가격에 접근할 때까지 발주를 미뤘다. 호남석유화학 실무자들은 협상 상대의 강·약점을 철저히 분석해 내는 능력이 남달랐다. 또 치고 빠지는 타이밍 싸움에도 능해 일본 업체들이 골머리를 앓게 만들었다. 특히 최병오 본부장과 이한수 부장의 가격협상 실력이 큰 도움이 됐다. 이는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이한수 부장 등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숙제를 내주고서는 그들 자신도 밤새 기술서적을 공부해 가며 배경지식 쌓기에 총력을 다한 결과였다. 이런 치열한 과정에서 일본 업체들은 하는 수 없이 한국 측이 원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어 진땀을 빼기 일쑤였다. 몇 가지 협상 결과를 살펴보면 HPE공장에 들어간 제립기 본체는 3억 1,170만 엔에서 협상이 시작됐지만, 협상이 끝났을 때는 최초 금액에서 27%가 깎인 2억 2,830만 엔으로 최종 결정되었고, PP공장의 알루미늄 사일로는 견적가에서 무려 36% 깎인 2,286만 7,000엔에 결정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EO/EG공장의 반응기 본체 또한 견적가 대비 20% 깎여 나간 2억 7,600만 엔에, HUC공장의 증류탑 본체는 8,803만 6,000엔으로 최종가가 결정돼 견적가 대비 36%의 가격 할인율을 최종 기록했다.
한편, 공장의 상세설계와 주요 기기 발주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1977년 10월부터 각 공장에 대한 세부공사가 시작되었다. 주요 공장의 설계상 특징과 공사 진행 기간은 다음과 같다.


HPP공장 건설 모습

 
  • ① HPE공장 - 1977년 11월 3일에 착공, 1979년 4월 26일 완공
    • · 향후 증산에 대비 공정상 병목 제거에 역점을 두고 시공
    • · 당시 기술공여사인 미쓰이조선도 갖추지 못했던 고성능 믹서(continuous intensive mixer) 설치
    • · 에너지 절감을 위한 변속모터(VVVF) 채택
  • ② HPP공장 - 1978년 3월 착공, 1979년 7월 30일 완공
    • · 글라스 라인드 베젤 4기, 반응기 8기, 제품 저장조 16기 도입
    • . 수소정제설비 설치
    • · 건조기에 internal heater 추가
  • ③ HEG공장 - 1977년 10월 27일 착공, 1979년 7월 31일 완공
    • · 세계 최대 크기 EO반응기 설치 (지름 5m, 전장 23m, 중량 430톤)
    • · EO 정제탑 (높이 54.4m) 국산화 성공
    • · SHELL 사의 최신 촉매 공법 채택
  • ④ HUC공장 - 1977년 11월 착공, 1979년 3월 23일 완공
    • · 비상시 대비 500톤급 질소저장시설
    • · 에너지 절감을 위해 주요 기기 적정용량 산출 후 선정


성공적으로 공장 건설을 마친 호남석유화학은 1979년 8월에 HPP공장 시험 운전을 마쳤고, 10월에 HPE공장과 HEG공장의 시험 운전을 무사히 마침으로써, 한국 석유화학산업 선두주자로서의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스토리북

홈 스토리북 01 Chapter 롯데케미칼의 탄생 Section 01 롯데케미칼 창업전사(創業前史) 3. 일본 업체들이 일본 측 실무자를 두고 한국 측 실무자를 먼저 찾아온 까닭은?
Section 01 롯데케미칼 창업전사(創業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