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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_ 흑자경영시대로의 진입


석유화학공업 제품의 수요가 점차 증가되는 가운데 경영여건이 개선되기 시작하자 1983년 호남석유화학은 ‘경영수지 흑자전환’을 경영목표로 삼아 전사적인 역 량을 결집하였다.

 

 
제2차 오일쇼크를 경험한 세계 각국이 석유소비량을 줄여나가는 가운데 원유가는 1981년 배럴당 34달러를 고비로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고공행진을 하던 원유가가 안정을 찾기 시작하자 국내 경기도 전반적으로 회복국면에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대내외 경제여건의 호전과 함께 원가절감 및 생산성향상에 노력한 호남석유화학은 1982년 들어 전년보다 15% 증가한 1,345억 원의 매출을 올리게 되었다. 특히 하반기부터는 창립 초기의 어려운 영업상황을 극복하고 흑자로 전환되는 개가를 이루면서 재무구조도 점차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수출증대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도 경영성과 개선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호남석유화학의 수출대상지역은 주로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의 동남아지역과 유럽지역의 국가들이었고, 수출된 주요품목은 PP필름, PP YARN, HDPE필름, 그리고 모노필라멘트 grade 등이었다.
이들 제품은 수출시장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품질로 평가 받으며 수출시장을 넓혀 나갔다. 특히 HDPE필름 grade인 7000F는 다른 제품에 비해 인지도가 높아 수출대상국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또한 수출용 원자재인 MEG의 수요증가에 힘입어 HDPE와 PP의 수출도 크게 증가하였다.

1억 불 수출의 탑

이러한 수출호조에 힘입어 1982년에는 총 1억 100만 달러를 수출하는 금자탑을 쌓았고, 그 해 11월 30일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영예로 이어졌다.
석유화학공업 제품의 수요가 점차 증가되는 가운데 경영여건이 개선되기 시작하자 1983년 호남석유화학은 ‘경영수지 흑자전환’을 경영목표로 삼아 전사적인 역량을 결집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 부서에서는 적극적으로 영업활동을 지원하였고, 영업부 소속 사원들은 ‘1시간 일찍 출근, 1시간 늦게 퇴근하기’를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전월의 판매 미달량만큼 당월에 목표를 상향조정하는 ‘목표량 달성 책임제’를 실시하는 등 판매증대에 전력투구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1983년 호남석유화학은 무휴가동을 실현한 것은 물론, HDPE 110%(77,612톤), PP 122%(97,686톤), EO·EG 127%(101,469톤)의 조업률과 생산실적을 올리며 공장가동 이래 최대규모인 27만 6,767톤의 생산실적을 달성하였다. 이와 같은 생산실적에 발맞춰 영업현장에서는 생산량의 99.7%인 27만 5,956톤을 판매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힘입어 1983년 호남석유화학은 1,718억 원의 매출에 58억 원의 흑자를 올려 영업 개시 이후 최초로 흑자를 실현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흑자경영은 1984년도에도 이어졌다. 1984년에 호남석유화학은 1,762억 원의 매출에 8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며 흑자경영의 기조를 이어갔다. 이처럼 경영실적이 개선됨에 따라 1982년 말 14.55%에 불과하던 자기자본비율이 1985년 말에는 30.2%로 현격히 높아졌으며,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591.9%에서 45.2%로 급격히 낮아졌다. 이에 따라 호남석유화학은 창립 초기의 극심했던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건실한 재무구조를 실현하며 본격적인 성장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표 1-18] 생산·판매실적 (1983년)

(단위 : 톤, 백만 원)

구분 생산량 판매량 매출액
HDPE 77,612 75,888 54,508
PP 97,686 100,201 71,033
EO·EG 101,469 99,867 46,262
합계 276,767 275,976 17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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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절 창립 초기 경영의 안정기반 구축